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모험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떠나는 모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모험"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모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전적 의미로 모험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 불확실한 결과, 그리고 도전적인 과정이 모험의 요소들입니다.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항상 분명히 보이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한 걸음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모험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는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1장 9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과 함께 모험하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구하는 것이고, 찾는 것이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왜 모험하는 것인가? 그 자체가 아직 소유하지 못함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을 받고 찾고, 열게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믿음으로 내딛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며, 무엇을 구해야 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깊이 묵상해 봅시다.
본문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구하라”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기도를 의미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찾으라”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이후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원할 때, 사용되었던 단어였습니다.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도 발견되는데, 동일하게“하나님을 찾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 단어 또한 기도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다” 이 단어는 어느 곳에 들어가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은유적인 표현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는데, 하나님 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들어 갈 수 있도록 간청하는 의미로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것 또한 기도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 모두다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본문은
세가지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기도하도록 강조하며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것이고, 기도를 통해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왜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이 말씀의 의미는 매우 명확합니다. 구하는 자만이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찾으라'와 '두드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찾는 자만이 찾을 수 있고, 두드리는 자에게만 문이 열립니다.
예수님의 강조점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시며 확신을 주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지상의 부모도 자녀에게 해로운 것을 주지 않습니다. 자녀가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녀가 생선을 원하는데 뱀을 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완전하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의무가 아닙니다. 기도는 믿음을 담은 간구이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모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기도하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거라고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악한 너희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는 확신입니다.
본론 2: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본문의 말씀은 누가복음 외에도 마태복음 7:1-11 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 되고 있습니다. 거의 비슷한데, 몇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1) 마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누가: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그 당시에 그들은 떡과 돌, 생선 (메기)과 뱀, 알과 전갈 (꼬리를 치켜 세운 모습)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 의도: 좋은 것을 주지 나쁜 것을 주겠느냐? 사용된 단어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2) 마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 7장 11절에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좋은 것'은 개인의 필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 천국 문 등 다양한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좋은 것'의 정점이 바로 성령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누가는 특별히 '성령'이라고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누가가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한 세대의 사람으로서, 성령의 임재가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능력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님이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모든 필요가 충족되며, 가치관이 뒤바뀌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성령님은 단순한 축복 중 하나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비록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점은 다를지라도 똑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태복음은 기도하면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했다면, 누가복음에서는 좋은 것이 바로 성령님이시며, 성령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실 수 있는 (해결할 수 있는) 분 이심 (마스터 키와 같은 역할을 하시는 분)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며, 그 성령님이 임하시면, 마태복음에서 가르치는 것 즉 생활에 필요한 것, 하나님의 나라와 의, 천국 (구원)이 다 해결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본론 3: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사용하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모두 헬라어 현재형 동사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위, 끈질긴 기도, 중단하지 않는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찾고, 계속해서 두드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는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매일 거두어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40년간의 만나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필요한 양만큼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도 생활도 그래야 합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기도, 하루가 아닌 평생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대화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미지의 땅을 정복하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그 비유를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끈질기게 간구한 과부의 기도가 결국 응답받은 것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 기도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믿음의 모험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도의 여정을 떠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감당해야 할 가정과 교회, 세상에서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뿐입니다. 성령을 구할 때,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생각해보십시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그들은 거인들과 견고한 성읍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다른 정탐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갈렙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담대히 요청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험을 선택했고, 결국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이는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제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첫째, 성령님을 이미 모시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응답으로 이미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기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 사명 감당을 위한 능력, 매일의 인도를 위해 더 깊은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주의 뜻을 이루는 능력으로 저를 채우소서.”
둘째,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공허함과 갈급함이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지, 나와 함께하시는지 확신이 없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이 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형식적인 신앙에서 인격적인 만남으로 나아가십시오.
오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저도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 안에 임하여 주옵소서.”
셋째, 아직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고 교회도 낯선 분들이 계신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다면 제게 응답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보십시오.
그것이 믿음의 첫걸음이자, 하나님과의 첫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주어지고, 열리고, 발견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확실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응답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최선으로 응답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여호수아처럼, 갈렙처럼 고백합시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주께서 말씀하신 그 날, 내가 이 땅을 취하리이다!"
기도는 믿음의 고백이며,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성령님을 간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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